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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

일본 막번체제 겐로쿠 문화 오시오의 난

by KRJPINFO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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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막번체제 겐로쿠 문화 오시오의 난
일본 막번체제 겐로쿠 문화 오시오의 난

무단정치

 

초대 장군 이에야스로부터 3대 장군인 이에미쓰까지 시기는 다이묘를 통제하고 막부의 전국적인 지배체제를 정립하기 위해 엄격한 무단정치를 펼쳤습니다.

 

4대 장군인 이에쓰나부터 지배체제가 안정되었고 학문과 교육을 통한 문치 정치를 실시하게 됩니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도시도 성장했고 교통의 발달로 도시간 상품의 유통도 활발해졌습니다.

 

 

삼도

 

17세기에는 특히 에도, 오사카, 교토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습니다.

 

에도는 막부 관리인 무사들과 참근교대로 상경한 무사들이 증가하며 17세기에는 인구가 110만에 달했습니다.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리며 막부와 각 번의 연공미와 특산물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토는 조정과 사원 등이 모여 있어 수 많은 참배자를 불러 들였고 전통 수공업 도시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세 도시를 삼도라 부릅니다.

 

 

상품유통의 발달로 상인 계층이 이익을 얻고 사회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막부는 영업세를 수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인과 직인의 영업 독점권을 인정했고 이 독점 조직을 가부나카마 라고 불렀습니다.

 

 

겐로쿠 문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교토 오사카의 부유한 조닌을 중심으로 겐로쿠 문화가 시작되었고 조닌들의 안정된 삶을 바탕으로 현실주의적 경향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가부키, 닌교 조루리, 소설, 기행문, 오키요에 등 문화 예술이 꽃피우던 시기였습니다.

 

기존 농업경제에 의존했던 막부와 번의 지출이 증가하여 재정이 어려워졌고 8대 장군 요시무네는 재정궁핍을 타개하기 위해 교호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무사들에게 검약령을 내려 지출을 억제하고 새로운 밭 개발을 장려하고 재능을 중시한 인재등용, 메야스바코를 설치하는 등 민중들의 투서를 받아 시정에 참고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재정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농민의 연공부담이 증가하고 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18세기 농촌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아사마산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이 이어져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무방봉기인 핫교잇키도 증가하고 도시에서도 상인과 고리대금업자를 습격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18세기 말 마쓰다이라 사다노부는 에도와 전국 주요도시의 소요, 농촌 황폐화 등을 수습하기 위해 간세이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역시 무사들에게 검약령을 내렸고 상업자본에 대한 통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빈민화된 농민들에게 귀농정책을 실시하고 기근에 대비해 의창을 설치하는 등 농촌과 도시의 소요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펼쳤습니다.

 

오시오의 난

 

 

1837년 오사카 막부 하급관리인 오시오 헤이하치로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오사카에서 난을 일으켰고(오시오의 난)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막부는 다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정치개혁을 실시하게 됩니다.

 

 

1841년 미즈노 다다쿠니는 덴포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근검절약과 풍속의 숙정을 강조했고 역시 귀농정책을 펼쳤습니다.

 

또한,  에도와 오사카 주변의 땅을 막부의 직할지로 하는 아게치레이를 내렸으나 무사들의 반발로 실패했고 막부의 정치적 한계와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와 달리 사쓰마 조슈 사가 등 서남지역의 웅번들은 번정개혁에 성공했고 막부 말기의 정국에 지도적인 역할을 함과 메이지유신의 주도세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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