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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일본 센노리큐 초암다실 히데요시 황금다실 다도

by KRJPINFO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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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센노리큐 초암다실 히데요시 황금다실 다도
일본 센노리큐 초암다실 히데요시 황금다실 다도

리큐 초암다실 / 히데요시 황금다실

 

아즈치 모모야마시대는 웅건한 시대정신의 영향으로 호장함을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용하고 한적한 멋을 즐기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호화스러운 쇼군의 다실과 검소하고 단순한 다도이 스승 센노 리큐의 초암다실이 공존하던 시대입니다.

 

 

16세기 초 도요하라 스미아키 라는 귀족은 정원의 소나무 밑에 초막을 지어 산리암이라 이름 지었는데,

 

산리암은 중세의 은둔자들이 속세를 떠나 산 속에 지은 암자가 아니라 도시 내에 지은 초암입니다.

 

 

다실

 

 

차 문화가 전래된 초기 다회는 객실 한쪽으로 병풍으로 가린 다석에서 행해졌고

 

다실은 다다미 4조반, 3조, 2조, 1조반의 작은 공간에 상좌에는 도코노마를 설치했습니다.

 

다기를 미리 씻어 마련해두는 예비실, 

 

손님이 다실에 오기 전에 대기하는 현관,

 

쓰보노우치 라 불리는 좁은 뜰과

 

로지라 불리는 정원의 샛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인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성, 후시미성, 나고야성에 다실을 설치하고 이를 산리환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데요시의 황금다실이 처음 사용된 것은 1585년인데 조립식이었기 때문에 1587년 기타노로 옮기고 

 

조선침략 때는 규슈의 나고야성으로 옮겨 사용했습니다.

 

다다미 3조 넒이의 황금다실은 천장, 벽, 기둥에 모두 금박이 입혀졌고 풍로, 물주전자 등 모든 것이 금제품이었습니다.

 

 

전국의 무장이나 해외무역으로 거금을 번 호상들은 정치 및 상업의 이유로 자주 다회를 열었습니다.

 

조용한 다실에서 다도의 풍류를 즐겼고 호화저택 내부에 마련된 초암은 도시민적인 사치스러운 미의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센노리큐

 

 

차 마시는 일을 도의 경지로 승화시켜 놓은 인물로 다도의 스승, 수호신으로도 불립니다.

 

다도의 이론을 완성시킨 것 외에도 다정, 다구, 예법 등 다도를 실질적으로 완성한 인물입니다.

 

다실은 화려하지 않게 초가지붕으로 얹어 한적하고 청아한 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작은 공간의 다실은 정원에서 들어갈 수 있도록 조그마한 쪽문을 만들어 몸을 굽히고 들어가도록 설계했습니다.

 

 

 

리큐는 노의 수련 단계를 모방해 다도수행을 규정했습니다.

 

15~30세까지는 모든 것을 스승에게 맡기고 그대로 따르고

 

30~40세까지는 자기 의견을 세우고 여러 법칙을 연구하고 

 

40~50세에 이르면 스승과 반대로 해보며 자기만의 방식을 시도하고 창안하고

 

50~60세에 이르면 다시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명인의 태도를 모범으로 삼습니다.

 

 

센노리큐는 다인으로서의 자격을 엄격히 규정했는데, 보통다인 - 애호가 - 명인 3단계로 나눴습니다.

 

보통다인은 차 맛을 식별할 줄 알며 차도 잘 끓이고 다도의 사범으로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애호가는 훌륭한 다구를 소유하고 신념을 갖고 공적이 많은 다인

 

명인은 다도를 감별하는 안목이 뛰어나고 창의, 신념, 업적을 모두 갖추고 깊은 의지를 갖는  자격을 고루 갖춘 다인을 의미합니다.

 

 

센노리큐의 제자인 난보소케이는 다도의 소양을 기록한 차에 관한 책으로 총 9권의 난보로쿠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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